마리 퀴리부인은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리 퀴리 부인은 어려서부터 철이 들 때까지 그녀는 어머니의 사랑을 한없이 의심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번도 어머니의 키스를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진실로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라면 왜 한 번도 키스를 해주지 않는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의심으로 무척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딸에게 사랑의 키스를 해주지 않은 것은,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일생 동안 폐결핵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그녀의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죽은 다음에야 알았다고 합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하면서 주님의 사랑이 내 곁에서 멀리 떠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고통이나 절망이나 아픔을 전혀 돌보아 주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곁을 떠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곁에서 지켜 보호하시되 시련을 통해 연단하시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끝까지 의지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 어려운 상황,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 믿음을 가지고, 전진하는 삶이 우리에게 요청됩니다.
오늘 본문 히10:35-39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전진하는 자의 자세”를 강조합니다. 당시 믿음으로 전진하고자 하는 1세기의 성도들에게 마음가짐을 본받아 우리도 믿음으로 전진하는 신앙으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1, 믿음으로 전진하려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담대하여야 합니다. 35절
중국 진나라 때 가장 부자는 '석'이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가난했을 때 들고양이 한 마리를 주워서 자식처럼 정성껏 길렀습니다. 이 고양이가 밤만 되면 땅을 한 군데 파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고양이의 반복된 일을 믿고 고양이를 따라서 함께 파들어 갔습니다. 얼마 안 있어서 지하실이 나왔고 그 지하실에 금은 보화와 회귀한 향로들이 그 안에 가득했습니다.
‘석’이라는 사람이 들고양이를 믿고 신뢰하였을 때 부자로 태어났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여 담대함을 가질 때, 승리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본문 히10:35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하다 보면 어려운 시련을 만나는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야 말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1세기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로부터 핍박과 회유, 로마제국으로부터 핍박과 박해 등 엄청난 고난을 당했습니다. 게다가 마귀 사탄의 거센 공격까지 당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그들은 조롱거리가 되고,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매를 맞고, 감옥에 매여 있었습니다. 재산을 빼앗기었습니다.
정든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고난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담대함으로 고난을 이겼습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제자들에게 담대한 신앙을 가르치셨습니다. 요 16:33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 여호수아서 에 여호수아가 등장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왜냐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입만 열면 원망했습니다. 불평이었습니다. 지도자 모세와 하나님을 탓했습니다. 이를 누구보다도 여호수아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백성인데, 어떻게 여호수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모세처럼 기적과 이적 행할 능력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한 적도 없었습니다.
큰 권능과 위엄을 사람들 앞에서 행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모세의 그늘 아래서 40년 동안 부담 없이 지냈을 뿐이었습니다. 영적 거인이었던 모세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몹시 위축되어 있었고,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담대함을 요구하셨습니다.
수 1:5~6에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수 1:7에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예수 믿기에 좋은 환경일 때도 있지만, 아닐 때가 더 많습니다. 요즘 같은 환경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핍박, 왕타, 비방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은 담대해야 합니다.
바울 역시 디모데에게 두려워하지 말 것을 권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딤후1:7). 우리도 믿음의 담대함을 가져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삶의 현장에서도 담대할 수 있기 바랍니다.
2, 믿음으로 전진하려면, 인내해야 합니다(36-37절).
신문사 기자가 장수하시는 분들을 취재했습니다. 100세 넘으신 노인분에게 어르신 당신의 "장수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1. 담배 피우지 않는다. 2. 과식하지 않는다. 3.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너무 뻔하고 식상한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자 노인 대답하길, "그런데 사람들이 끝까지 하지 않아! 많은 사람이 중도에 포기하고 말아!“ 라고 응했답니다. 참 의미 있는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끝까지 인내하며 할 때, 좋은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본문 36-37절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1세기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엄청난 고난 속에서도 임박한 종말 의식을 갖고 어떠한 고난도 참고 인내했습니다. 소극적으로 인내하면서 지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인내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주님 재림을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히11장에 믿음의 선진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내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100세까지 25년 동안 인내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삭은 모리아 산에서 죽음의 시련을 인내했고, 야곱은 20년 동안 외삼촌 집에서 인내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꿈의 사람 요셉은 17세에서 30세까지 무려 13년 동안 노예 생활과 감옥 생활로 인내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00여 년 동안 인내하며 고난을 이겨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욥의 인내는 대단했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자녀와 재산과 건강 등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탄의 혹독한 시험 앞에서 인내했습니다. 그는 끝까지 인내했기 때문에 결국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출애굽 했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실패했을까요? 물론 그들이 원망하고 불평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를 찾으면, 그들이 인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광야를 거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광야를 통과하면서 그들은 인내하지 못했습니다. 힘들다고 그곳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삶도 똑같습니다. 가나안 땅은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광야 끝에 성공의 가나안, 승리의 가나안, 축복의 가나안이 있습니다.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 같지만, 광야를 인내하며 잘 통과해야만, 성공이 있고 승리가 있고 형통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 가운데 ‘존 번연’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핍박을 받고 투옥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감방에 갇혔기 때문에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는 참고 인내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감옥 생활이 지옥처럼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건져 주옵소서. 이 감옥에서 저를 꺼내 주옵소서.” 계속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상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세 번씩이나 똑같은 음성이 들렸습니다.
번연은 깨달았습니다. “아, 하나님이 나를 감옥에서 꺼내주시지 않을지라도 족한 은혜를 주시는구나.” 그 순간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감방이 안방처럼 아늑해졌습니다. 참고 인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무려 12년 동안이나 갇혀 있었지만, 평안히 기도와 묵상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옥에서 그가 쓴 책이 바로 성경 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읽는 ‘천로역정’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인내해야 합니까? 성경은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인내하라고 말합니다(37절). 인내하는 것은 마치 ‘농사 짓’는 것과 비슷합니다. 기본적으로 인내가 필요합니다.
농부가 할 일을 다 했더라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할 일이 많습니다. 병충해 예방 및 잡초 제거, 태풍피해 복구 등 할 일이 많습니다. 신약성경 야고보서에 영적 ‘농사 짓’는 것에 대해 잘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5:7-8). 최선을 다하되, 은총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인내하는 동안 열심히 씨 뿌리고, 지경을 넓혀 밭을 일구어야 합니다. 인내의 길이는 그릇의 크기와 같습니다. 신앙생활은 인내와의 싸움입니다. 이 인내하는 교회, 인내하는 성도, 인내하는 삶을 일구어 나갑시다.
3, 믿음으로 전진하려면, 뒤로 물러가지 말아야 합니다(39절).
언더우드 선교사는 인도 선교를 준비했다가 조선 선교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인은 조선 땅에 함께 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가 속한 개혁교단에서 조선에 선교사 파송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조선 선교가 언더우드에겐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졌습니다. 선교사로 파송 받기 위해 개혁 교단에서 장로교단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친구 아펜젤러와 함께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새벽에 제물포항에 도착했습니다.
31년간 조선에서 선교 활동을 열정적으로 감당했습니다. 따라서 그가 없는 한국 교회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위대한 승리자가 되려면 뒤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결심한 바가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헌신한 바가 있다면, 후회하거나 중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뒤돌아보거나 뒤로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39절에도“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뒤돌아보면 망합니다. 바울의 제자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롯의 처는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을 하고 홍해를 건넜는데도 불구하고, 조금 힘들고 어려우면 자꾸만 과거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민 14:3에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출애굽을 하고 홍해를 건넜으면,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가나안 땅을 향해 진군해야 합니다.
바울은 푯대를 향해 날마다 전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빌 3:12). 예수님도 눅 9:62에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손에 쟁기를 잡고 뒤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뒤돌아보기만 해도,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전진하려면 뒤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코로나 19”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예배 지키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믿음 지키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믿음으로 전진하여야 합니다. 믿음으로 전진하려면, 세 가지가 요구되고 요청됩니다. 1, 담대하여야 합니다. 2, 인내하여야 합니다. 셋째, 뒤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 예빛교회는 충남 아산시 용화고길 61-5에 있다. 사역자는 윤정상 담임목사, 한상환 장로, 정영희 권사 등이 섬기고 있고 열린선교회 조환주 목사님이 협력 목회하는 중이며, 당진예빛교회 황만철 전도사님을 지교회 전도사님으로 세웠다.
미래 목회현장을 그리는 예빛교회는 첫째, 말씀이 살아있는 목회이다. 성도들 가슴에 하나님 말씀이 고동쳐 말씀대로 살게 하고자 한다. 둘째, 치유가 있는 목회이다. 영육 간에 질병에 처해 있는 이들에게 주님 치유 손길을 만나 행복한 인생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마지막으로, 전도 중심의 목회이다.
특히, 예빛교회는 5주째 있는 주일은 ‘해피데이 전도주일’로 10년 넘게 전도잔치를 열고 있다. ‘해피데이 주일예배’ 통해 하나님께서 예비한 영혼들 열매 맺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가 예빛교회를 통하여 점점 확장되어 가는 일에 쓰임 받기를 바라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3대 목표를 가지고, “예수님의 빛으로 달려가는 예빛교회(표어)”를 지향하며 성도들과 함께 힘차게 달려가고 있고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 *표어 : 예수님의 빛으로 달려가는 교회(예빛교회)윤정상 담임목사 주소: 충남 아산시 용화고길 61-5 전화: 041-532-8290 © 아산미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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