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특집]아산향교 '공자 추모 2572주년 추계 석전대제' 봉행

아산미래신문 | 기사입력 2021/09/29 [17:05]

[특집]아산향교 '공자 추모 2572주년 추계 석전대제' 봉행

아산미래신문 | 입력 : 2021/09/29 [17:05]

▲ 아산향교가 추계 석전대제 봉행하고 있다.

아산시 소재 아산향교가 지난 9월 16일 공자 추모 2572주년 추계 석전대제를 봉행하며 지역의 안녕과 시민의 안전을 기원했다. 이번 추계 석전대제는 코로나19 재확산 상황에 맞춰 외부인사를 최소화하고 유림 내부인사들 위주로 진행됐다. 석전대제는 1986년 11월 국가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됐으며,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에 성균관과 전국 모든 향교에서 일제히 치러진다. 석전대제 행사를 준비하고 시작을 알리고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이 차례로 선현들에게 술을 따르는 헌례, 분헌관들이 성현들에게 술을 올리는 분헌례에 이어 음복례, 망료례 순으로 진행됐다. /원성희 기자  © 아산미래신문

▲ 아산향교가 추계 석전대제 봉행후 기념했다.(사진 가운데 김일희 전교)  © 아산미래신문

 

   
아산향교 의 연혁(沿革)
                               
소재지 : 충남 아산시 영인면 여민루길 82                        
문화재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기념물 제114호

 

▲ 아산향교 전경  © 아산미래신문

 

아산향교 의 원래 위치는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아산현 학교조에 관아 동쪽 2리지점 에 있다고 하는데 지금의 영인 중학교 뒤 산 넘어 에 있던 곳으로 지금도 주민들은 향교 골 이라고 부른다.


아산향교가 처음 세워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1392년)이 개국 하면서 태조 이성계가 1읍 1교의 시책에 의해 아산향교도 그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측이 된다.


태종 15년(1415년)에 정이오의 여민루기에 현감 최안정이 학당을 증설(차보건學堂(차보건학당)하였다고 하며 당시 학당은향교를 말한다고 한다.


그 후 세조 8년(1462년)에 보수 한 것으로 돼 있으며, 현재 향교의 위치는 영인산 동쪽 5리 지점이며 관문 남쪽 2리 지점에 북향으로 건축 돼 있다

 

당시 상량문에는 만력 8년(1580년) 선조 13년 경진 3월 초8일 상량문에 기록이 되어있고 김현성현감이 건축하였다.


또 박대화현감시 승정7년(1634년) 인조 12년 갑술 5월 초4일) 중수한 상랑문이 서기2000년 7월 22일 대성전을 수리 하면서 건축한 시기와 장소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자료=아산향교

 
           
釋奠(석전)이란

석전제, 석채(釋菜), 상정제(上丁祭), 정제(丁祭)라고도 한다. 정제, 상정제라고 한 것은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 : 첫 丁日)에 행해졌기 때문이다.


석전은 <예기 禮記>의 왕제(王制) 문왕세자편(文王世子篇)에 나오는 말로 석(釋)은 '놓다'[舍也], '두다'[置也 ]의 뜻이고 전(奠)은 '그치다'[停也 ]의 뜻으로 처음에는 소박하게 채소만 놓고 제사를 지내다가, 뒤에 고기와 과일 등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했다.


중국에서는 이미 주대(周代)부터 순(舜)·우(禹)·탕(湯)·문왕 등 여러 성인들에게 석전을 올렸으며, 한(漢)나라 이후 유교를 숭상하면서 공자(孔子)를제사하는 의식으로 굳어졌다. 후한의 명제는 공자의 옛집을 찾아가 공자와 그의 72제자에게 제사를 올리기도 했으며, 당(唐)나라 이후 공자를 선성(先聖), 안회(顔回)를 선사(先師)로 받들어 제사지내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739년에는 공자에게 문선왕(文宣王)이라는 시호가 추증되었다. 그 뒤 명나라 때 태학(太學)의 문묘를 대성전이라 하여 석전을 올리는 사당으로 정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석전이 실시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고구려·백제·신라 모두에 교육기관이나 유학을 교육한 관직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석전을 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경우 717년(성덕왕 16) 당나라에서 공자와 10철(十哲) 72제자의 화상을 가져와 국학에 모셨다는 기록으로 보아 국학에서 석전을 지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국자감(國子監 : 成均館)에 문묘를 두어 제사를 지냈는데, 왕이 직접잔을 올렸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건국이념이 유고인 만큼 처음부터 성균관에 문묘를 설치하고 중국의 현인(賢人)과 우리나라의 현인을 합친 112현인의 위패를 모신 뒤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지방에서는 향교(鄕校)에서 석전을 주관했다. 1949년 전국유림대회의 결정으로 112현인 가운데 우리나라의 18현인만 대성전에 모시고, 중국 94현인의 위패는 묻었다.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다.

 


◆ 대성전  
대성지성 문선왕의 위폐를 모시는 전각. 공자를 주벽으로 모시고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 등 사성위을 좌, 우에 배향하고 승조 4현의 위폐 그리고 우리나라 18현의 위폐을 종향하였고 영정사진을 걸었다.
◆ 명륜당  
명륜당은 외심문을 통과하여 중앙에 위치한 건물로 바닥은 두꺼운 쪽 마루 바닥으로 옛날 학생들의 강학하던 교육장이고 지금의 학교 교실과 같으며 연령층은 고르지 않았다고 한다. 학생정원은 30명이라 하였다.(신정아규기)
그리고 백록동규가 걸려있고 현판 20개도 걸려있다.
◆ 양재
명륜당 좌우로 동재, 서재가 있는 것이 정상이나 아산향교는 특성상 명륜당 우측에 동재가 위치하고 동재 정면 계단아래 서재가 위치하고 있다.
◆ 수복청
서재 옆으로 수복청이 있다.(문묘를 관리하던 하인이 머무는 곳)
◆ 전사청
외삼문 우측에 전사청(제수용품을 장만 하던 곳)이 있다.
◆ 홍살문
홍살문은 외삼문 앞쪽에 세워진 문이다.
◆ 하마비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나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비석이다.
◆ 유림회관
아산시 여민루길 85 향교의 좌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상1층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48평 규모이다. 유림회관은 회의장과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 석전대제  
공자를 모신 사당인 문묘에 지내는 제사이다. 춘추 석채시 제물은 관아로부터 봉진하였다. 소용되는 해물의 무역은 백석포리 포구에서 예납 받았다.
금년 춘계 석전대제는 3월 20일(음력2월8일) 봉행을 하였고 추계 석전대제는 9월 16일(음력8월10)에 전국적으로 봉행된다.

 

▲ 김일희 전교   © 아산미래신문

◆ 아산향교가 하는 일
춘·추 석전대제 봉행
초하루 보름 분향
유교문화 활성화 사업- 향교, 서원 활용사업 연간 운영
춘계, 추계 충·효·예·교실 운영
명륜당 서예교실 매주 금요일 운영

 

◆ 김일희 전교 약력
충남 아산 영인 출생
온양고 졸업
현 아산향교 전교
현 문화원 역사문화 연구소장
전 문화원 부원장
전 영인면 향토지 편찬 추진 위원장

 

▲ 아산향교가 추계 석전대제 봉행  © 아산미래신문

▲ 아산향교 내부  © 아산미래신문

 

  © 아산미래신문

 

  © 아산미래신문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