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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전설] '청댕이고개'

아산미래신문 | 기사입력 2021/02/17 [17:50]

[아산의 전설] '청댕이고개'

아산미래신문 | 입력 : 2021/02/17 [17:50]

▲ 느티나무  © 아산미래신문

 

청댕이고개의 전설(360년)  

 

▶느티나무(온양6동)
풍기동 청댕이 고개는 2016년 봄 확장공사가 진행되어 4차선의 넓은 도로가 개통되었다. 고개 양쪽으로 무성한 숲이 이루어져 어두울 정도였고, 두 그루가 한 쌍인 보호수 느티나무는 마치 매연에 찌들어서 때가 묻은 듯 항상 컴컴했다.


기묘한 생김새가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인도가 없는 고갯길에서 마땅히 접근하기가 수월하지 않아  고개를 넘나들 때마다 오래도록 눈으로만 인사하여 왔다.
 

청댕이 고개(일명 청동고개, 마금댕이 고개)는 과거 온양의 중심지였던 구온양을 기준으로 현재의 아산경찰서 옆의 청댕이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였기 때문에 청댕이 고개라 하였다.
 

이 고개는 백제시대 때 전쟁에 나간 남편이 전사하자 홀로된 며느리가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면서 일어난 벼락바위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 고개 바로 아래에 벼락바위가 있어 하늘이 감동하사 금(또는 은)이 쏟아져 나왔다는 이야기를 다시 떠오르게 한다.
 

고갯마루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뒤틀리며 살아온 세월이 무척이나 고달팠는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기묘하다. 코끼리와 물개를 떠올리기도 하고, 콧대 높은 시어머니와 낮게 숙이고 있는 며느리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숲의 기운에 적응하고, 고갯마루의 바람을 맞으며 이웃 나무와도 싸우면서 때론 양보하면서 살아온 모습이 오늘날 휘어지고 비틀린 형상을 이루고 있어 처연하다.
 

그런데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던 2015년 겨울 어느 날! 한 그루가 없어졌다.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공사를 하는 바람에 나무 바로 옆까지 도로가 침해 되었는데 위태위태하던 차, 때마침 내린 폭설에 견디질 못하였다.
 

  © 아산미래신문



새마을 사업이 한참 진행되었던 70년대에 초가집도 고치고 마을길도 넓히는 과정에서 전국의 보호수는 30%가 훼손되었다. 인위적으로 베어 졌다기보다는 넓어지는 길의 조성에 나무 주변은 축대를 쌓거나, 복토를 한 것이 결국은 나무의 숨통을 옭죄는 요인이 되었다. 나무밑동에 5cm 이상 흙을 덮거나 주변부에 콘크리트 등의 경화된 소재나 블록포장은 수분과 산소의 공급량을 현격히 저해하는 치명적 결함을 준다.
 

특히 새마을사업 때에는 관에서 시멘트를 무료로 배포하였으니 더욱 나무를 짓눌렀다. 당장의 모양새에 집착한 무지 때문에 수백 년 살아온 나무들의 안타까운 고사가 속출하였던 것이다. 나무의 속병은 십 수 년에 걸쳐 서서히 발현되기 때문에 이미 병증이 나타났을 때는 치유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청댕이 고개의 이 느티나무들 역시 차량소통으로 인해 꽉꽉 다져진 지반과 복토에 시달렸고, 겨울이면 고개언덕에 뿌리는 염화칼슘 때문에 갈증만 더해갔다. 두 나무가 뿌리를 부둥켜안고 긴 세월을 버텨왔거늘 여러 악재가 동시다발로 겹친 결과로 보인다.

 

  © 아산미래신문



지금은 짝을 잃은 한 그루만 기지개를 펴듯 언덕 가운데로 머리를 치켜 올려 성질을 부린 모양새가 되었다. 그나마 북쪽 방면에서 보노라면 새로 만든 생태도로에 가려 우렁차던 스타일도 구겨졌다.
 

여전히 대형 차량이나 거센 돌풍에 위험도가 높은 환경 하에 있어 걱정스럽다.


청댕이 고개는 조선시대에 온궁에 행행하는 임금의 어가행렬이 지나가던 어로였다고 한다. 왕이 지나갈 때 남들처럼 가지하나 번쩍 들어 벼슬이라도 한자리 얻었다면, 오늘날 4차선 도로쯤은 저 멀리 밀어 보낼 수 있었으련만 . . .


최근에 생을 마친 느티나무는 영인산의 산림박물관에, 청댕이 고개언덕에서 바다사자처럼 비대하게 늘어졌던 몸뚱이가 보존 전시되어 있다.


발행처 온양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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